어느덧 내가 개발자가 된 지 2년이 지났다. 시간이 어떻게 이렇게 빠르나 싶다. 1년 동안 뭐했는지, 요즘 나의 근황과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적어 보려 한다.
1년 동안 무엇을 했나
지난 1년간 블로그 업데이트가 되게 없었다. 핑계 아닌 핑계를 대자면 일을 배우고 1년때까지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정리하는 데 재미를 느꼈지만, 그 이후부터는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기술적으로 업무 하면서 뭔가를 새로 배운다는 게 좀 더뎌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새로 배우는 건 있었다. 근데 그걸 파고들고 정리할 마음이 안 들었다. (시간이 없었다는 말은 못하겠다.)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내가 배운 게 나만의 인사이트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이걸 배웠다고 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기분도 들지 않았다. 이게 내가 했던 업무상의 문제일 수도 있고, 어느 분야든 겪는 초반에 폭발적인 성장 이후의 완만한 성장 곡선 단계에 접어들어서 이기도 하다고 생각이 든다.
저번에 적은 1년차 회고글이랑, graphmark 글을 보면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건데, 일을 시작한 이후로부터 항상 나는 성장에 집착하고 있었다. 개발자로서의 성장, 팀원으로서의 성장, 성공의 경험 등등 성장하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면, 항상 정체되는 기분이 들었고, 뭔가 지금 가는 방향이 잘못된 방향인 것 같아서 불안했다.
불행히도 그동안에는 성장하는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되게 고통스러웠고 그만큼 가치관에도 변화가 생겼다. 하고 있던 프로젝트들이 큰 성취감 없이 연속으로 3~4번씩 폐지되면서 엄청난 현타를 느꼈다. 남들이 의미있었다고 해도 내가 쏟은 열정이 공중분해되는 기분은 굉장히 견디기 힘들었다. 그때까지 내가 바래왔던 것은 ‘백엔드 개발자로서의’ 기술적인 성장과 성공의 경험이었다. 당시에는 둘 다 이룰 수 없다는 절망감과,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것도 내가 아니라는 무력감도 동시에 느꼈었다.
그러던 중 새로운 제품에 합류하게 되었다. 문라이트라는 ai pdf reader (지금은 우리가 문라이트를 이거보다는 좀 더 넓은 제품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이거였다) 제품이다. graphmark와 동시에 llm b2c 제품으로 시작했다. graphmark를 접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회사에 어떤 걸 기여할 수 있을 지 많이 고민이 되었다. 최대한 많이 기여할 수 있어야 내가 성장할 거라 믿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러한 고민도 하면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이곳인가에 대해 고민도 했다.
이때 문라이트 혼자 만들고 출시하신 도토리님이 팀이 합류 제안을 해주셨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백엔드 성장과는 거리가 멀어보였기 때문이다. 그치만 도토리님이 또 제안을 해주셨고, 설득 아닌 설득으로 회사 내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은 팀에서 회사에 기여하는 게, 다른 인원이 많은 프로덕트 가서 기여하는 것보다 더 쉽다고 말씀해주셨다. (당시 나는 대안으로 추천 시스템 개발하는 팀으로 가고 싶어했다.) 틀린 말도 아니고, 지금 다른 팀에 가봤자 별로 기여를 못할 것이라 생각이 들어 확신은 못 가진 채로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너무나 좋은 기회였다. 처음에는 그냥저냥 흘러가는 대로 일했지만, 한 달 두 달 일하면서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같이 일하면서 문라이트가 성장하는 걸 보며, 성취감을 점점 느끼게 되었다. 더이상 백엔드 엔지니어로서 일만 하지 않게 되었다.
백 뿐만 아니라 프론트도 했고, 고객분들의 데이터도 분석했고, 앱도 개발해서 시장에 내놓았고, 고객분들한테 직접 이메일도 돌리면서 설문조사로 피드백도 모았다. 도토리님이 읽으라는 책 읽고,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제품 강의를 듣고, 매주 금요일마다 문라이트에 배운 내용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얘기도 했었다. 이 사람이 정말 리더로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가끔씩 느낀 적은 있긴 했지만 일하는 게 정말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기술적인 성장보다 더! 중간에 정말 힘들다는 생각도 정말 많이 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점점 더 제품 중심으로 사고하고, 고객 중심으로 사고하려고 노력했다. 고객분들이 피드백을 주시면 우리가 전달하려고 했던 가치가 잘 전달됐다는 생각에 더 뿌듯함을 느꼈다. 기술적인 성장과, 성공의 경험 이외에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이걸 뭐라 말할 지는 잘 모르겠다… 제품 성장, 고객 중심적 사고 능력의 성장…? 아무튼 이런 목표가 생겨버렸다.
지금은 뭘 하고 있나
위에서 말했듯이 문라이트를 개발중이다. 월매출 목표를 정말 절망적으로 높게 잡고 그걸 위해 계속 달려나가는 중이다.
개인적으로 아침마다 수영도 10개월째 배우고 있고, 헬스도 수영 안하는 날에 열심히 하고 있고, 인스타도 지우고, 유튜브도 핸드폰으로는 안 보고, 전화영어랑 말해보카도 열심히 하고 있다. 삶의 난이도가 점점 더 올라가고 있다. 사실은 내가 올리는 중이다.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좀 가까워져보려 한다. 감명깊게 읽었던 책이 있으면 독후감도 블로그에 가끔씩 올려보겠다.
이제부터는 내가 배우는 걸 그대로 냅두는 게 아까워서 팀에도 공유하고, 여기에도 공유하려고 한다. (블로그 목적이 애초에 이거였긴 하다.)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해보겠다.
커리어 고민
스타트업 개발자들의 뭔가 필수 코스같은 느낌인데, 아직도 뭔가 몇만 건의 트래픽! 강력한 시스템의 설계! 를 못해본 것에 대해 커리어적 두려움은 있긴 하다. 근데 어쩌겠어 난 이미 스타트업 와버렸는걸. 정말 어쩔 수 없다. 이직을 시도해볼 순 있겠지만 문라이트 개발하는 게 지금 너무 재밌어서 이걸 어떻게든 마무리는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새로운 목표도 생겼으니 거기에 좀 더 파고들어보는 것도 전혀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도 내가 뭐가 되고 싶은건지 잘 모르겠다. 근데 아직은 백엔드까지는 아니더라도 개발자는 맞는 것 같다. 솔직히 그냥 돈만 잘 벌면 좋겠다. 그러려고 개발자 된거니까… 책 10배의 법칙에서 개인의 시간과 능력은 무한하다는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에 맞는 성장과 보상이 따라온다면 뭐든 좋을 것 같다.